행구동 골드클래스

면적 13.44㎢, 인구 6053명(2008)이다. 치악산의 북쪽 줄기인 향로봉(1042.9m) 아래 계곡으로 동·북·남쪽은 높은 산들이 둘러 있어 동쪽은 횡성군 강림면, 북쪽은 봉산동과 소초면, 남쪽은 반곡동과 인접한, 원주시 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동명의 유래는 살구나무가 많았다 하여 살구뚝 또는 행구(杏邱)라고 하였다.
원주군(원성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리(四里) 일부와 오리(五里)를 병합하여 행구리(杏邱里)라고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에 원주읍이 원주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행구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원주-산다랭이 유원지 관광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문사 청석탑(普門寺靑石塔:강원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1970년경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중 땅 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는데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당시에 새로 만들었다. 원래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행구동 98번지 석경 마을의 고문골에 있는데,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고 하였다 하며, 고문절·웃고문절(보문사) 아랫쪽이므로 '아랫고문절'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때 동악신을 봉한 관계로 국형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1680년(숙종 6)에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1949년에 자항(慈航)대사가 중창하고 1974년에 김용호가 중수하였다.
대웅전 옆에는 동악단(東岳壇)이 있는데, 조선 태조가 이 단을 쌓아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해마다 봄·가을에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이 들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완치되었으므로 정종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돌경이(석경)에 운곡선생 묘소와 묘비가 있다. 운곡선생은 고려 말의 은사(隱士)로 일찍이 조선 태종을 가르쳤으므로 벼슬에 오르도록 자주 권고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이색 등과 사귀면서 부모를 모시고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낸 운곡 원천석(元天錫)이다. 이 묘소 동북쪽에 있는 석경사(石逕寺) 경내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 '모운재'가 있다.
오릿골에 수령 약 1000년 되는 높이 35m, 둘레 8.27m의 느티나무(도 지정 보호수)가 있다.
'산다랭이 유원지'는 유서 깊은 국형사를 중심으로 치악산 향로봉의 연봉이 솟아 있고, 계곡의 맑은 물과 수령 100년이 넘는 송림이 울창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행구동 [Haenggu-dong]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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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군(원성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리(四里) 일부와 오리(五里)를 병합하여 행구리(杏邱里)라고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에 원주읍이 원주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행구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원주-산다랭이 유원지 관광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문사 청석탑(普門寺靑石塔:강원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1970년경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중 땅 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는데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당시에 새로 만들었다. 원래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행구동 98번지 석경 마을의 고문골에 있는데,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고 하였다 하며, 고문절·웃고문절(보문사) 아랫쪽이므로 '아랫고문절'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때 동악신을 봉한 관계로 국형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1680년(숙종 6)에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1949년에 자항(慈航)대사가 중창하고 1974년에 김용호가 중수하였다.
대웅전 옆에는 동악단(東岳壇)이 있는데, 조선 태조가 이 단을 쌓아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해마다 봄·가을에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이 들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완치되었으므로 정종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돌경이(석경)에 운곡선생 묘소와 묘비가 있다. 운곡선생은 고려 말의 은사(隱士)로 일찍이 조선 태종을 가르쳤으므로 벼슬에 오르도록 자주 권고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이색 등과 사귀면서 부모를 모시고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낸 운곡 원천석(元天錫)이다. 이 묘소 동북쪽에 있는 석경사(石逕寺) 경내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 '모운재'가 있다.
오릿골에 수령 약 1000년 되는 높이 35m, 둘레 8.27m의 느티나무(도 지정 보호수)가 있다.
'산다랭이 유원지'는 유서 깊은 국형사를 중심으로 치악산 향로봉의 연봉이 솟아 있고, 계곡의 맑은 물과 수령 100년이 넘는 송림이 울창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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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3.44㎢, 인구 6053명(2008)이다. 치악산의 북쪽 줄기인 향로봉(1042.9m) 아래 계곡으로 동·북·남쪽은 높은 산들이 둘러 있어 동쪽은 횡성군 강림면, 북쪽은 봉산동과 소초면, 남쪽은 반곡동과 인접한, 원주시 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동명의 유래는 살구나무가 많았다 하여 살구뚝 또는 행구(杏邱)라고 하였다.
원주군(원성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리(四里) 일부와 오리(五里)를 병합하여 행구리(杏邱里)라고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에 원주읍이 원주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행구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원주-산다랭이 유원지 관광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문사 청석탑(普門寺靑石塔:강원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1970년경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중 땅 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는데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당시에 새로 만들었다. 원래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행구동 98번지 석경 마을의 고문골에 있는데,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고 하였다 하며, 고문절·웃고문절(보문사) 아랫쪽이므로 '아랫고문절'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때 동악신을 봉한 관계로 국형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1680년(숙종 6)에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1949년에 자항(慈航)대사가 중창하고 1974년에 김용호가 중수하였다.
대웅전 옆에는 동악단(東岳壇)이 있는데, 조선 태조가 이 단을 쌓아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해마다 봄·가을에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이 들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완치되었으므로 정종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돌경이(석경)에 운곡선생 묘소와 묘비가 있다. 운곡선생은 고려 말의 은사(隱士)로 일찍이 조선 태종을 가르쳤으므로 벼슬에 오르도록 자주 권고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이색 등과 사귀면서 부모를 모시고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낸 운곡 원천석(元天錫)이다. 이 묘소 동북쪽에 있는 석경사(石逕寺) 경내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 '모운재'가 있다.
오릿골에 수령 약 1000년 되는 높이 35m, 둘레 8.27m의 느티나무(도 지정 보호수)가 있다.
'산다랭이 유원지'는 유서 깊은 국형사를 중심으로 치악산 향로봉의 연봉이 솟아 있고, 계곡의 맑은 물과 수령 100년이 넘는 송림이 울창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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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3.44㎢, 인구 6053명(2008)이다. 치악산의 북쪽 줄기인 향로봉(1042.9m) 아래 계곡으로 동·북·남쪽은 높은 산들이 둘러 있어 동쪽은 횡성군 강림면, 북쪽은 봉산동과 소초면, 남쪽은 반곡동과 인접한, 원주시 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동명의 유래는 살구나무가 많았다 하여 살구뚝 또는 행구(杏邱)라고 하였다.
원주군(원성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리(四里) 일부와 오리(五里)를 병합하여 행구리(杏邱里)라고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에 원주읍이 원주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행구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원주-산다랭이 유원지 관광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문사 청석탑(普門寺靑石塔:강원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1970년경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중 땅 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는데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당시에 새로 만들었다. 원래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행구동 98번지 석경 마을의 고문골에 있는데,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고 하였다 하며, 고문절·웃고문절(보문사) 아랫쪽이므로 '아랫고문절'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때 동악신을 봉한 관계로 국형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1680년(숙종 6)에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1949년에 자항(慈航)대사가 중창하고 1974년에 김용호가 중수하였다.
대웅전 옆에는 동악단(東岳壇)이 있는데, 조선 태조가 이 단을 쌓아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해마다 봄·가을에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이 들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완치되었으므로 정종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돌경이(석경)에 운곡선생 묘소와 묘비가 있다. 운곡선생은 고려 말의 은사(隱士)로 일찍이 조선 태종을 가르쳤으므로 벼슬에 오르도록 자주 권고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이색 등과 사귀면서 부모를 모시고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낸 운곡 원천석(元天錫)이다. 이 묘소 동북쪽에 있는 석경사(石逕寺) 경내에 그를 추모하는 사당 '모운재'가 있다.
오릿골에 수령 약 1000년 되는 높이 35m, 둘레 8.27m의 느티나무(도 지정 보호수)가 있다.
'산다랭이 유원지'는 유서 깊은 국형사를 중심으로 치악산 향로봉의 연봉이 솟아 있고, 계곡의 맑은 물과 수령 100년이 넘는 송림이 울창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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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3.44㎢, 인구 6053명(2008)이다. 치악산의 북쪽 줄기인 향로봉(1042.9m) 아래 계곡으로 동·북·남쪽은 높은 산들이 둘러 있어 동쪽은 횡성군 강림면, 북쪽은 봉산동과 소초면, 남쪽은 반곡동과 인접한, 원주시 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다. 동명의 유래는 살구나무가 많았다 하여 살구뚝 또는 행구(杏邱)라고 하였다.
원주군(원성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리(四里) 일부와 오리(五里)를 병합하여 행구리(杏邱里)라고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에 원주읍이 원주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행구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원주-산다랭이 유원지 관광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문사 청석탑(普門寺靑石塔:강원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1970년경 옛 보문사 절터 위에 현재의 보문사 절을 신축하던 중 땅 속에서 출토되어 복원하였는데 1∼5층의 옥개석과 2∼4층의 탑신석, 상대갑석·하대갑석은 본래의 것이나 나머지는 당시에 새로 만들었다. 원래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국형사(國亨寺)는 행구동 98번지 석경 마을의 고문골에 있는데,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고 하였다 하며, 고문절·웃고문절(보문사) 아랫쪽이므로 '아랫고문절'이라고도 한다. 조선 태조때 동악신을 봉한 관계로 국형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1680년(숙종 6)에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1949년에 자항(慈航)대사가 중창하고 1974년에 김용호가 중수하였다.
대웅전 옆에는 동악단(東岳壇)이 있는데, 조선 태조가 이 단을 쌓아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해마다 봄·가을에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정종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이 들어 이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완치되었으므로 정종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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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릿골에 수령 약 1000년 되는 높이 35m, 둘레 8.27m의 느티나무(도 지정 보호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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